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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26일 제33회 메시야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를 보고
음악박사 정덕기교수 2017-12-10

20171126일 제33회 메시야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를 보고

정덕기

가끔 나에게 세계에서 통할만한 일반적이고 보편타당한 음악을 해야지 왜 한국적인 것을 고집하느냐고 질문하는 분들이 있다. 물론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람이면 의식하지 않고 작곡하여도 자연스럽게 한국적인 것이 묻어나오지 않겠는가? 그러니 한국적인 것, 한국적인 것, 그렇게 되뇌며 고집하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

 

그러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말이 있다. 그저 하는 말이 아니다. 가장 절실한 말이다.

언젠가 어느 합창단 지휘자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오래전 그 분은 본인의 합창단을 이끌고 미국공연을 갔었다. 모처럼의 공연이라 국내공연보다 몇 배 공들여서 준비를 하였다. 프로그램의 곡들은 몇 개의 앙코르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국 곡으로 준비하였다. 왜냐하면 미국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곡이, 아무래도 미국곡일 것 같아 그렇게 하였다. 본인을 포함하여 합창단원 전원이 연주하는 모든 곡을 암보하였다. 그리고 재미로 관객들에게 흥미를 주기위하여 춤과 퍼포먼스도 안무가를 불러 완벽하게 준비하였다.

그러나 그 미국공연은 실패하였다고 그 분은 말하였다. 그럼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공연 내내 관중들의 반응이 없었다. 스테이지가 끝나도 건성으로 대강치는 몇몇의 박수가 귀에 미미하게 들릴 뿐, 연주하는 도중에는 진땀이 나고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반응이 없었다. 물론 안무가를 불러 준비한 춤과 퍼포먼스도 반응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 후 그 지휘자가 앙코르곡으로 아리랑을 연주한 후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그처럼 냉랭하였던 연주회장이 아리랑을 부르자 미국 관중들이 비로소 환호하며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연주곡목 선정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미국 관중들 앞에서 미국 곡을 연주하였으니 아무리 많은 연습을 하였다 하더라도 본토박이인 그들이 듣기에는 그들 나름의 뉘앙스나 느낌, 특유의 리듬, 그리고 맛을 살리기에는 한없이 부족했을 것이다. 춤과 퍼포먼스도 잘 준비하였다고는 하나, 노래 부르는 것이 직업인 합창단원들이 얼마나 몸이 유연하게 잘 돌아갔겠는가? 시쳇말로 식모 앞에서 행주 흔드는 격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우리의 민요 아리랑을 연주하자 그것은 그들이 그간 쉽게 접하여 보지 못한 색다르고, 특이하고, 재미있는 장단에, 그 무엇보다도 그들이 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환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아리랑과 같은 우리 고유의 것이었다. 그 후 그 분은 외국공연을 갈 때 항상 우리음악을 준비해서 간다고 하였다.

 

세계적인 작곡가 베토벤은 결코 세계적인 음악을 한 분이 아니다. 지극히 독일적인 사고와 방법, 그리고 재료로 음악을 한 분이다. 그러나 독일음악이 세계를 점령하니, 그 분은 이미 세계적인 작곡가가 되어있었다. 셰익스피어도 세계적인 문학을 한사람이 아니다. 영국문화와 관습을 문학 속에 녹이신 분이다. 그러나 그는 세계적인 대문호이다.

 

우리는 우리 음악을 하여야 경쟁력이 있다. 세계적인 보편타당한 음악을 한다하여, 색채나 느낌이 베토벤을 뺨치는 음악을 작곡하였다하여도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물론 구조와 생리가 다른 우리가 그렇게 할 수도 없을 뿐더러 하였다하여도 숫자 하나를 더하는 결과밖에 또 다른 특별한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요사이는 각종 예술단체에서 우리 것을 많이 한다. 오페라단도 우리 소재의 창작오페라를, 뮤지컬도 우리의 뮤지컬을, 합창단은 연간을 따져도 우리 것이 전체 레퍼토리의 반이 넘고 있다. 특히 시립합창단은 시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해 지자체에서 만들어졌으니, 잘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국 곡보다는 우리말로 된 우리 것을 하는 것이 시대흐름에도 잘 부합되어서 그런지 정말 많이 하고 있다.

 

그런데 굳이 시대에 역행하고 있는 예술단체가 있으니 바로 오케스트라이다. 아직도 외국 곡 일색이다. 우리 한국 작품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있다한들 가뭄에 콩 나듯 연간 통계를 내어도 10곡이 채 안될 것이다. 그것도 주요 레퍼토리가 아닌 음악회 서곡의 체면치레로 말이다. 이러한 오케스트라가 과연 우리나라의 오케스트라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이다.

외국 곡들은 그 나라의 오케스트라가 더 잘 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아무리 잘한다 한다 한들 정서와 생리가 다른 우리는 결국 모방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 오케스트라는 우리 것을 하여야 생명력이 있고,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성장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우리의 작곡수준이 떨어져서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도 키워야 사람이 되고, 작품도 키워야 작품이 된다.

언제 기회라도 제대로 준적이 있는가? 물론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많은 작곡가들에게 기회가 제대로 주어진다면 합창에서처럼, 세계에도 능히 통할 풍성한 곡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런데 이런 귀한 일들을 15년 이상 연주해오고 있는 유일한 우리 오케스트라가 있다. 바로 비영리민간단체 메시야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다. 나는 이 메시야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유일한 우리들의 희망이라 생각한다. 열악한 가운데서도 33회 동안이나 정기연주회를 이끌며 힘겹게 우리 것만을 고집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 나는 이 속에서 우리 희망의 싹을 찾고 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관현악 지속연주사업의 일환으로 개최된 이번 제33회 정기연주회에서도 이수은 작곡의 김성태와 이흥렬 가곡을 바탕으로 한 가을의 노래서곡을 시작으로 13곡의 주옥과 같은 작품들이 선을 보였다. 연주의 질도 날로 새로워져 가슴 벅찬 감동과 함께 감상하기에 충분하였다.

이 곡들을 다른 어떤 오케스트라가 연주해 줄 것인가? 이 생각만 하여도 고마울 따름이다.

물론 훌륭한 연주였지만 다른 오케스트라와 마찬가지로 부분적으로 미흡한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든든한 후원과 좋은 여건이 주어지게 되면 국내 어느 연주단체들 보다도 앞으로 점점 더 좋아질 밖에 없을 것이며 더 감동적인 우리 곡들을 연주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우리 것을 한다는 자부심과 긍지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음악을 하는 메시야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사랑하며 또 자랑한다.

정덕기 (작곡가, 백석대학교 교수, 한국작곡가회 회장, 칼럼니스트, 천안시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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